중국대륙과 한반도의 왕조시대에서는 높은 분을 존칭(2인칭 칭호)할 때 그 분이 거주하는 건물과 연관시킨 용어를 주로 사용하여왔다. 거주 건물 밑에 ‘아래 하(下)’를 붙여 표현을 하였는데 이는 “높은 분이 거주하는 건물아래서 (엎드려) 뵈옵니다.” 라는 의미이다. 지위의 차이는 주로 건물의 크기로 결정된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대략 폐하, 전하, 저하, 합하, 각하의 순이다.
1. 전하(殿下)
전하의 전(殿)은 근정전, 태화전 등과 같이 왕이 거주하는 대궐의 큰 건물을 의미하므로 “전하(殿下)”란 “임금님이 거주하시는 건물(殿) 아래서 임금님을 뵈옵니다.”라는 뜻의 2인칭 칭호이다. 그리고 존칭을 강조하기 위해 ‘주상(主上)전하’와 같이 ‘아래 하(下)’자와 반대되는 ‘위상(上)자’를 사용한 존칭을 덧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반대로 왕이 자신을 칭할 때(1인칭 칭호)는 과인(寡人: 모자랄 과, 사람 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자신을 낮추는 표현으로 주로 잘못을 인정하거나 겸양할 때 쓴다. 예를 들면 "가뭄이 심한 것은 과인이 부덕한 탓이로다."는 식이다.
2. 폐하(陛下)
폐하의 폐(陛)는 황제가 거주하는 건물을 오르는 계단(섬돌 ‘폐’)을 의미한다. 황제에게는 왕과는 차원이 다른 존칭을 사용했다. 왕의 경우 왕이 거주하는 건물 아래에서 배알을 요청하였으나, 황제의 경우 황제가 거주하는 건물의 아래에 위치한 높은 계단의 아래에서 배알을 요청하는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한편, 황태자나 황후 등에게는 왕에게 쓰는 전하라는 존칭을 쓰게 하였다. 반대로 황제가 자신을 칭할 때는 짐(朕)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시황이 황제만 쓰는 1인칭으로 하도록 명한 뒤로 그대로 굳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광개토태왕, 고려 광종 등 자신을 황제로 칭했던 군주들에 의해 일부 사용되다가 조선 말기, 왕국인 조선을 황제국인 대한제국으로 승격시킨 고종황제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3. 저하(邸下)
저하(邸下)의 저(邸)는 저택, 관저 등에 쓰이는 글자로 전(殿)보다는 적은 규모의 집을 의미하므로 왕세자에게만 적용되었는데 특이하게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존칭이었다.
4. 합하(閤下)
합하(閤下)은 당초 왕세손이나 대원군 또는 정일품(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벼슬아치에게 쓰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특수한 권력을 지닌 인물에게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었다. 합(閤)은 원래 왕조시대 고관대작의 큰 건물에 있는 쪽문을 의미했으나 이후 ‘궁궐의 전용 출입문(閤)’으로 의미가 상향되면서 궁궐을 출입할 때 자신만의 전용문을 사용할 정도로 왕의 권위에 버금가거나 심지어는 능가하는 실력자의 존칭으로 사용되기 시작된 것이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은 고종을 청정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본인의 ‘궁궐 전용 출입문’을 이용하였는데 신하들은 ‘대원위 합하’라 존칭하였다. 사극을 보면 군사정변을 일으켜 최고 실력자가 된 고구려의 연개소문, 고려의 무신정권 최고 지도자 최충헌, 일본 전국시대의 최고 실력자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도 ‘합하’라는 존칭을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모두 허울뿐인 황제나 왕을 제치고 실권을 쥐게 된 인물들이었다.
5. 각하(閣下)
규장각, 보신각, 내각, 각료 등의 단어에 쓰이는 각(閣) 또는 누각(樓閣)의 원래 뜻은 ‘조망을 위하여 여러 층으로 짓는 동아시아 전통 건축물’이나, 각하(閣下)에서의 각(樓)은 정승의 집무처를 의미한다. 처음에는 왕과 왕세자의 다음 서열인 재상급에 각하라는 존칭을 사용했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때 총독에게 사용하는 경어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에는 대통령 뿐 아니라 장관들과 고위 장성들에게도 이러한 존칭이 사용되었다. 각하를 국가원수에게만 쓰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이다. 그렇다면 국가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에게 전하라는 표현 대신 재상급 경칭인 각하를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천황이 존재하는 일본에서 왕이 아닌 총리에게 전하라는 존칭을 쓰지 못하고 각하라는 존칭을 쓰게 되었고, 내각제의 총리와 비슷한 지위였던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와 같은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보통사람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노태우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청산 차원에서 각하란 호칭을 쓰지 말도록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각하라는 표현을 금했다.
당연히 고관대작이 아닌 일반인들의 존칭에는 건축물 용어가 포함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존하(尊下)와 귀하(貴下)인데, 각각 ‘존경하는 분아래, 귀하신 분아래(엎드려 인사한다)’라는 뜻으로 주로 편지글에서 상대편을 높이어 그의 이름 뒤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