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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건축기행

세계 7대 건축물 3 : 스톤헨지

서영복 객원 기자 입력 2022.09.13 11:25 수정 2022.09.15 15:35

세계 7대 건축물 3 : 스톤헨지

                                                                                             스톤헨지

스톤헨지는 원형으로 늘어선 돌기둥으로, 보통은 영국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원형의 흙 구조물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들을 여러 형태로 세워 배열한 선돌(입석) 유적지이다.

이 거대한 입석(立石) 구조물은 폭 6미터, 깊이 1.4미터 도랑에 둘러싸인 원형 광장을 지칭하는데, 스톤헨지의 안쪽 지름은 98미터이다. 그리고 그 구성은 둥근 고리 모양으로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열석과 동북 방향으로 U자 형태로 벌어진 거대한 돌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스톤헨지(Stonehenge)라는 영어 명칭은 중세 시대에 붙었다. 솔즈베리 스톤헨지 외에도 이와 비슷한 돌기둥 무리가 영국과 아일랜드 각지에 분포한다.

스톤헨지 터는 심지어 스톤헨지를 건설하기 이전부터 중요한 곳이었던 듯하다. 기원전 8천 년 무렵에 나무 기둥들을 세운 흔적이 발견된다. 이후 스톤헨지는 3단계로 건설되었다. 사슨석(Sarsen stone)과 청석으로 이루어진 스톤헨지는 바깥쪽 원을 셰일 서클, 안쪽 원을 블루스톤 서클이라고 부른다. 사슨석으로 만든 원은 기원전 1500년경에 세워졌고, 블루스톤(청석)으로 만든 원은 기원전 2000년경에 세웠다고 한다.

바깥쪽 셰일 서클은 사슨석을 30개 세운 다음 그 위에 돌을 가로로 눕혀서 원을 그리도록 배치하였는데, 현재는 30개 중 17개만 남았다. 세일 서클 바깥쪽에는 Y홀, Z홀이라 불리는 작은 구덩이들이 동심원을 그리듯 배열되었는데, 이중 Z홀이 안쪽, Y홀이 바깥쪽에 있다.

Y홀과 둑 사이에는 '오브리 구덩이(Aubrey holes)'라고 불리는 구덩이가 56개 있었지만 지금은 그중 절반 정도는 메워졌다. 오브리 구덩이에서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뼈가 발굴되었는데, 방사성 연대측정 결과 중앙의 돌기둥이 세워지기 500여 년 전으로 나타났다. 스톤헨지 일대는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화장 유골 매장지였던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는 시신을 화장한 장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화장한 후 여기로 시신을 옮긴 것이다. 유골의 성분 검사 결과 스톤헨지에 묻혔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스톤헨지 근방 출신이 아니라 영국 전지역에 걸쳐 있었는데, 영국 웨일즈 서쪽 지방 사람들이 많았다.

오브리 구덩이 위쪽에는 작은 선돌 두 개가 작은 입석이 정반대 방향으로 놓였다. 두 선돌 가까이에는 원형 무덤이 있는데, 입석과 무덤을 더해 '포 스테이션(네 개의 측점석, 測点石)'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쪽의 청석들은 돌을 세우거나 눕히지 않고, 바깥쪽의 셰일과 비교해 크기가 작고 형태도 불규칙한 돌들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블루스톤 서클 안에는 말발굽 형태(입석 두 개 위에 돌을 가로로 눕혀놓은 형태)로 배치된 셰일 삼석탑(三石塔)이 다섯 기 있다. 그 안쪽 중앙에는 편평한 제단석이 놓여 있다. 스톤헨지라는 명칭은 바로 이 삼석탑에서 유래하였는데, 고대 영어에서 '위에 올려놓은 돌'을 의미하는 말이다.

셰일 서클 바깥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힐스톤(발뒤꿈치 돌)이라 불리는 돌이 홀로 서 있다. 하짓날 태양이 힐스톤을 통과하여 스톤헨지의 중심 중앙제단을 비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돌과 사슨석 구조물 사이에는 슬로터스톤(도살석屠殺石)이라 불리는 돌이 있다. 슬로터스톤은 현재 옆으로 누워 있지만 옛날에는 똑바로 서 있었다고 추정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구멍들을 파고 그 구멍에 작은 돌들을 넣어 테두리가 형성된 형태였으나, 기원전 2800년 무렵 스톤헨지를 둘러싼 도랑과 둑, 그리고 정북을 가리키는 힐스톤을 더했고, 그로부터 800년 후 원을 그리는 청석(靑石) 표석들을 세워 스톤헨지의 모습을 갖추었다.

여기서 청석(靑石)이라고 번역한 단어가 영어로는 Bluestone이기 때문에 '청석'이 파란색을 띠는 특정한 암석 종류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Bluestone은 '(스톤헨지 인근에서) 나오지 않는 외래(外來) 돌'이란 뜻이다. 실제 스톤헨지에서 '청석 표석'의 구체적인 암석 종류는 스무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웨일즈의 프러셀리(Prescelly)산에서 나온 것들이다. 아마도 비커(Beaker)인들이 육로를 타고 인력으로 끌고 온 듯하고, 몇몇 청석들은 프러셀리산이 아닌 웨일즈의 다른 곳에서 가져온 듯하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1500년 무렵에 사슨석(Sarsen石)으로 삼석탑(三石塔)을 세웠는데, 웨식스(Wessex) 문명의 소산이라고 추정한다.

스톤헨지 리버사이드 프로젝트(Stonehenge Riverside Project)를 주도한 마이크 파커 피어슨(Mike Parker Pearson) 교수는 프러슬리산에서 운반해온 청석 돌기둥을 처음에는 바로 오브리 구덩이 위에 세웠다고 주장했다. 즉, 청석 표석의 본래 용도는 묘비(墓碑)였는데, 후일 돌기둥들을 안쪽으로 옮겼기 때문에 오브리 구덩이만 움푹 패인 흔적을 남긴 채로 남았다는 말이다.

파커 피어슨 교수는 스톤헨지 인근에서 발견된 우드헨지(Woodhenge)와 더링턴 월스(Durrington Walls) 유적지가 스톤헨지와 관련이 깊고, 우드헨지와 더링턴 월스는 산 사람, 스톤헨지는 죽은 사람을 위한 종교적 공간으로 기능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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