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세계건축기행

세계 불가사의 건축물 : 카이로 성채

서영복 객원 기자 입력 2023.04.04 09:44 수정 2023.04.04 09:44


1. 요약

카이로 성채 혹은 살라딘 성채는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중세시대 이슬람식 성채이다. 자세한 위치는 카이로 중심부 근방에 위치한 언덕인 모카탐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와 박물관 등 역사적인 사적지를 보존하고 있다.

2. 축조

카이로 성채는 1176년에서 1183년 사이 아이유브 왕조의 통치자였던 살라딘에 의해 요새화되었다. 이는 십자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몇 년 후 파티마 왕조에게 패하고, 살라딘은 카이로와 푸스타트를 둘러싸는 외벽을 축조하기 시작한다. 살라딘은 "외벽이 있으면 나는 두(카이로와 푸스타트) 특별한 구역을 만들 수 있다. 바로 한 군대로 두 도시를 지킬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나일강 둑에서 나일강 둑을 둘러싸는 것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이라 말하며 이를 지시했다고 한다.

카이로 성채는 벽의 중앙부에 존재했으며, 모카탐 언덕에서 낮게 튀어나온 곳에 건설했다. 이는 공격하기 매우 어려운 위치에 지어졌으며, 19세기까지 이집트 총독부의 중심부로 남아있다는 것이 이의 효율성을 증명해준다. 성채는 이스마일 총독에 의해 1860년 아브딘 궁전으로 이동하고 나서 그 역할을 멈췄다.

성채가 완공된 1183년~1184년에 살라딘이 축조한 성벽은 1238년까지 그가 죽고나서 까지도 계속 지어졌다. 성채의 관개시설은 살라딘이 85m 짜리 요셉의 우물을 지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볼 수 있다. 이 우물은 소용돌이의 우물로 잘 알려졌는데, 입구가 300개의 계단으로 구성되어서 우물로 내려갈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우물에서 샘이 솟으면 이는 상수도를 따라 성채 곳곳에 공급된다고 한다. 수량을 늘리기 위해 맘루크 왕조의 9번째 통치자였던 나시르는 나일강에서 물레방아를 만들어 우물로 보내는 수로 체계를 만들었다.

3. 증축 및 재건

이집트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 성채로부터 통치되어 왔다. 카이로 성채는 1171년 의해 최초로 세워졌으나, 여러 차례 증축되고 재건되었다. 살라-앗-딘의 시대에 이 요새 안에는 왕궁들, 군사 사령부, 정부 관청 등이 있었다. 1250년부터 초기 맘루크 술탄들은 많은 수의 건물을 보다 웅장한 양식의 건물로 대체했고 이 역시 나중에는 똑같은 운명을 맞아 헐렸으나, 1335년 완공된 안-나시르 무함마드의 모스크만은 예외였다. 파빌리온과 정원들을 갖추고 있었으며 1200명 이상이 거주했던 이 하렘은 현재 무함마드 알리의 모스크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있었다. 1400년에 술탄의 궁전에는 약 6천 명의 어린 소년들이 노예로 잡혀 있었다.

이집트가 오스만 제국의 속주였으며 튀르크의 파샤에 의해 지배당하던 시기인 1517년 이후, 모스크, 관문, 성 건물 등이 새로이 지어졌다. 동쪽 입구 위에 25m 높이로 솟아 있는 부르그 알-무카탐 탑도 그중 하나이다. 1650년에 이 성채는 거리, 개인 주택, 상점, 시장, 공공 목욕탕이 있는 주거 지역으로 발전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1798년 이집트를 침공한 이후 성채를 점령했으며, 영국 군대는 1882년부터 1947년 물러날 때까지 이곳을 차지했다.

1805년 오스만 제국 황제에 의해 이집트의 총독으로 임명된 무함마드 알리 파샤는 스스로 지배 왕조를 수립했으며 이 왕조는 1953년까지 이어졌다. 유능한 근대적 개혁가였던–성채에 있는 그의 새로운 궁전은 가스를 이용해 불을 밝힐 정도였다–그는 새로운 거리를 짓고 성채 안의 낡은 건물들을 새롭게 다시 세우며 카이로를 재정비했다. 당시에 세워진 건물 중 하나가 웅장하고 화려한 모스크로 1848년 완공되었다. 무함마드 알리 파샤는 나중에 이 모스크에 묻혔다. 오늘날 카이로 성채에는 국립 경찰 박물관과 이집트 군사 박물관이 있다.



저작권자 ㈜한국집합건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