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민·관·협회소식

충무공남이장군기념사업회 2023년도 정기총회 열려..

남길동 기자 입력 2023.05.13 19:14 수정 2023.05.15 16:53

조선시대 불세출의 영웅 충무공 남이장군을 기려..
2018년4월 경남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에 남이장군기념관과 사당(충무사) 건립

충무공 남이장군기념사업회(회장 남승철)는 13일 경남 창녕군 부곡면 충무공 남이장군기념관(충무사)에서 내외빈 등 150여명이 사당 참배를 마친후 2023년도 정기총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 13일 경남 창녕군 부곡면 충무공 남이장군기념관(충무사)에서 사당 참배를 마친후 2023년도 정기총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 이날 가운데순으로 성낙인 창녕군수, 우측으로 우기수 경남도의원, 남승철 회장, 하찬목 부곡면장, 남충희 재무이사, 좌측으로 한삼윤 창녕문화원장, 남중희 감사, 김종호 창녕군의원, 남상숭 사무총장 등 주요 내빈으로 충무사 사당 참배, 기념관 관람을 마쳤다.
↑↑ 이날 공로상 포상자로 김해거주 방길섭, 대구거주 김혜경께 감사의 마음으로 감사장을 전달했다.
↑↑ 사진은 늘 아낌없는 봉사를 해준 남상서 부산종친회장, 구산리 김기자 부녀회장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금일봉을 전했다.
이번 총회는 식전행사로 사당 참배, 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내외빈 소개, 개회선언, 국민의례, 개회사, 축사, 격려사, 목적 및 사업낭독, 공로상 시상, 감사보고, 사업보고, 재무보고, 우리들의 조상이야기, 즐거운 한마당으로 편자 던지기, 투호 던지기, 역사퀴즈, 노래자랑의 순으로 개최했다.

이날 주요 내빈으로 성낙인 창녕군수, 우기수 경남도의원, 김종호 창녕군의원, 하찬목 부곡면장, 한삼윤 창녕문화원장, 남치우 남씨대종회장(의령남씨 대종회장), 남상찬 남씨의산위 종회장, 남상서 부산남씨 종친회장, 남상태 대구남씨 종친회장 등 자리를 빛냈으며, 늘 아낌없는 봉사를 해준  공로상 포상자로 김해거주 방길섭, 대구거주 김혜경께 2점 수여하고 남상서 부산종친회장, 구산리 김기자 부녀회장께는 감사의 마음으로 금일봉을 전했다.
↑↑ 액운을 떨쳐 버리고 행운을 가져온다는 말편자 던지기, 투호 던지기로 참가자들은 민속전통놀이에 흠뻑 빠져 즐거운 한마당이 되었다.
↑↑ 남승철 회장은 말편자 던지기, 투호 던지기 종목별 1등 2등 3등 순위로 나눈 참가자들에게 상품을 전달하고 있다.
액운을 떨쳐 버리고 행운을 가져온다는 말편자 던지기, 투호 던지기로 1등 2등 3등 순위로 나눈 참가자들은 민속전통놀이에 흠뻑 빠져 즐거운 한마당이 되었다.

남치우 대종회장은“지난 건립당시 남이장군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을 역임했었지만, 충무공 시호를 받은 총 9명중 남이장군은 550년전 받았음에 비해 이순신장군과 곽재우장군의 사당보다 너무 늦었다”하면서“종친들의 힘으로 준공한 사당을 국가문화재로 승격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성낙인 군수는 “남이장군님의 애국충정에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전 국민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면서 “장군님의 기념관과 사당, 애마였던 적마를 탄 기마상이 창녕군에 위치하여 무한한 영광이며 우포 늪과 부곡온천을 연계한 관광명소 및 애국충절의 고장으로 정착시키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면서 축사를 전했다.

남승철 회장은 “남이장군의 사당은 젊은 후손들에게 호연지기를 함양시키고 나라에 대한 충절과 애국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면서 “오늘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가정의 달 5월에 종친 가족들과 2023년도 정기총회 행사에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내년에는 다양한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8년 4월 경남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에 남이장군기념관, 충무사 사당을 건립했다. 기념관(충무사)은 남이장군의 후예 의령남씨 의산위 집성촌으로 남이장군의 조부 태종의 부마 남휘와 4녀인 정선공주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 충무공 남이장군의 영정을 모셔진 충무사의 내부 전경사진
↑↑ 기념관에는 충무공 남이장군이 착용했던 찰갑과 투구, 장검, 월도, 창 등 전시돼 있다.
↑↑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에 남이장군기념관(충무사)과 기념관 입구에는 애마였던 적마를 탄 남이장군의 거대한 기마상이 있다.(전경사진)
↑↑ 남이장군의 조부인 태종의 부마 남휘와 정선공주의 묘역이 있는 가까운 곳으로 남이장군기념관(충무사)이 위치하고 있다.
남이장군기념관은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전각 1채, 장군의 유물과 사료가 전시된 전각 2채로 조성되었다. 남이장군이 착용했던 찰갑과 투구, 장검, 월도, 창, 세조임금이 하사한 ‘적개공신록’, 무과 장원급제 및 병조판서 교지 등 전시되었고 기념관(충무사) 입구에는 애마였던 적마를 탄 남이장군의 거대한 기마상이 있다. 특히 참배 및 애마였던 적마의 편자를 만지면서 성명,주소,소원을 간절히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후문(後聞)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다.

 

[남이장군의 시]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 1467년 여진족 추장 이만주를 척살한 뒤 남이 장군이 남긴 시다.남이 장군을 모함한 유자광은 위의 시에서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 하면 훗날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를 트집 잡아 역모라고 모함했다.후에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유자광의 계략에 의한 것이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뒤 반탁시위에 김구(金九)는 친필로 6.23 반탁데모에 충무공 남이장군이 지은 '남아 이십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에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라는 시를 선사하여 격려하였다.

남이장군의 후예로 의령남씨 대종회, 남이장군사당제보존회, 충무공남이장군 기념사업회 등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13호 남이장군묘(墓)는 남이섬(가묘)이 아닌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번지에 모셔져 있다. 남이장군은 1468년 돌아가실 때에는 역적으로 몰려 참형에 처해졌지만 사망 후 350년 만인 1818년 순조18년에 영의정 남공철(남이장군의 방손(傍孫))의 상소로 충무공 시호가 내려졌다.

 

남이장군에 대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수록된 기록
[저자/제공처 한국학중앙연구원]남이 (南怡 , 1441~1468) 본관이 의령(宜寧) 이며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의 손자였다.조선 개국공신인 남재(남재)의 5대손으로 의산군 남휘의 손자이다.1457년(세조 3년)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했다.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여진을 토벌하여 이등군공에 올랐다. 26세에 병조판서에 임명되었다.그러나 1468년 예종이 즉위(1468년)하면서 어떤 사람이 남이가 공주와 간음하였다고 소문을 날조하여 곤욕을 치렀는데 그해 숙직을 서면서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이 들어설 징조”하고 했고 이를 엿들은 유자광은 영의정 강순 등과 역모를 하였다고 모함하여 하옥되었다. 1468년 10월 27일 남이는 군기감 앞 저잣거리에서 강순 등과 함께 효수당했다.

 

-충무공은 조선조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무인들에게 사후(死後)에 조정에서 내린시호(諡號)의 하나로서 모두 아홉분이 시호를 받았다. 역대 아홉분의 충무공은

• 조영무(趙英茂:?~1414)조선왕조 개국공신,태종때 우의정
• 이준(1441~1479)이시애난평정하여 적개공신이 됨.병조판서,영의정
• 남이(1441~1468)17세때 무과에 장원.25세때 길주에 가서 이시애난을 평정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움.여진족 토벌 때 우상대장으로 큰 공을 세움.27세때 병조판서가 됨. 흔히 소년장군 남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순신(1545~1598)임진왜란때 3도수군 통제사로 한산대첩등 백전백승한 전세계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승전기록 세움. 거북선발명. 민족의성웅으로 추앙을 받고 있음. 흔히 충무의 시호를 가진 인물들중에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져 있다.
• 김시민(1554~1592)진주목사, 경상 우병상역임.임진왜란때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 3,800여명의 군사로 왜군2만여명을 사상. 상락부원군으로 추봉.영의정에 추종
• 이수일(1554~1632)임진왜란때 예천에서 의병일으킴.경상좌도 수군절도사.병마절도사로 야인정벌,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이괄의난평정.형조판서.좌의정.영의정에 추증
• 김응하(1580~1619)25세때 무과합격,선전관,선천군수역임.광해군때 명나라요청으로 요동에 가서 3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후금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영의정추증
• 정춘신(1576~1636)17세대 광주목사 권률의 장개를 의주가지 피신한 선조에게 전달,만주망명막음,명·청·일본을 오가며 외교가로활약.정묘호란때는 팔도부원수로활약.
• 구인후(1578~1658)정묘호란때 주사대장으로 후금과싸움.병자호란때는 3천명의병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위 어영대장이 됨.형조판서,공조판서,우의정역임.

 



저작권자 ㈜한국집합건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