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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엔딩코디네이터

잘 죽는다는 것

신형범 기자 입력 2023.08.12 07:28 수정 2023.08.17 17:05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각자의 안부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친구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냐고. 나는 오래 살려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잘 죽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의사인 친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우리 나이에 운동도 너무 심하면 좋지 않으니 적당히 하라'고 충고합니다. 

 


저마다의 삶이 다르듯 죽음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상치 않은 사고로 창졸간에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달, 몇 년씩 병을 앓다가 마지막을 맞는 이도 있고 노쇠하여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사고나 병으로 갑자기 죽기보다는 살만큼 살다가 자연스럽게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것을 원합니다. 늙도록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바라며 오래 앓지 않고 곱게 자연사하는 좋은 죽음을 꿈꿉니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도 하고 몸에 좋은 것 챙겨 먹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건강한 노후를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삼 일 정도 아프다 고통스럽지 않게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행운은 정말 극소수에게만 해당하는 드문 죽음이며 그런 점에서 그 경우는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이라고 친구는 말합니다. 그러면서 미국 외과의사 아툴 가완디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보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이런 자연사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다…’ 로 이어지는 목차만 봐도 노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생애 마지막이 어떨지 짐작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친구는 ‘늙어감’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우리 법의 의학적 체계는 노령을 사인(死因)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로 인한 질병을 사망원인으로 적시하지만 실제 죽음에 이르는 가장 큰 이유는 ‘노화’라고 잘라 말합니다.

 
결국 늙는다는 것 자체가 죽을 만큼 힘든 일이고 죽음의 중요한 원인입니다. 매스컴은 백 살에도 집안일 하고 마라톤도 하고 여행을 즐기는 건강한 노인들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관리만 잘하면 자신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친구는 부질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물론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라는 얘긴 절대 아니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생물체는 늙고 죽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노인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타인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를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홀로 설 수 없는 시기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의료진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죽음을 접하는 의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니 느낌이 또 새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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