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칼리스토의 카타콤베(이탈리아어: Catacombe di San Callisto)는 이탈리아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 있는 로마의 카타콤바 가운데 하나로서 2세기에서 4세기까지 재위한 몇몇 교황의 유해가 묻혀 있기 때문에 교황 납골당(이탈리아어: Capella dei Papi)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납골당을 더는 사용하지 않고 남아 있던 유해들도 로마의 여러 성당으로 뿔뿔이 이장되면서 차츰 붕괴되었다. 납골당에서의 마지막 이장 작업은 9세기 교황 세르지오 2세 재위 때 롬바르드족의 침략이 있기 전날 납골당의 유해를 산 실베스트로 인 카피테 성당으로 이장하였다. 이곳은 로마의 카타콤바와는 달리 아우렐리우스 성벽 안에 있었다.
갈리스토 카타콤바는 교황 갈리스토 1세가 아직 부재였던 시절에 교황 제피리노의 지시에 따라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갈리스토는 본래 이전부터 있었던 초기 기독교의 히포게움을 확장하여 오늘날의 카타콤바로 만들었다. 갈리스토 1세 본인은 아우렐리우스 가도에 있는 칼레포디우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갈리스토 카타콤바와 납골당은 1854년 선구적인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조반니 바티스타 데 로시에 의해 발굴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갈리스토 카타콤바는 한때 0.15 km2나 되는 광활한 넓이를 자랑했으며, 총 열여섯 명의 교황과 쉰 명의 순교자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었다. 이곳에 묻힌 교황들 가운데 아홉 명은 이곳 지하 납골당에 안장되었으며, 4세기 교황 다마소 1세는 납골당으로 통하는 계단을 만들도록 지시하였다. 발견된 그리스어 비문 중에는 교황 폰시아노와 교황 안테로, 교황 파비아노, 교황 루치오 1세, 교황 에우티키아노 등의 이름도 있었다. 푸리우스 디오니시우스 필로칼루스가 쓴 좀 더 긴 내용의 교황 식스토 2세의 비문도 발견되었다.
교황들의 납골당 바깥은 교황 카이오와 교황 에우세비오의 무덤이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카이오-에우세비오 구역이라고 명명되었다. 또 다른 구역에는 교황 고르넬리오의 무덤이 있다. 교황 고르넬리오의 무덤에도 역시 필로칼루스가 쓴 묘비명이 있다. 묘비명은 ‘순교자 고르넬리오’라는 뜻의 라틴어 ‘CORNELIVS MARTYR’이다.
교황 식스토 3세에 의해 놓인 명판(名板)에는 식스토 2세 본인을 포함하여 디오니시오, 고르넬리오, 펠릭스 1세, 폰시아노, 파비아노, 카이오, 에우세비오, 멜키아데, 스테파노 1세, 우르바노 1세, 루치오 1세, 안테로 등의 교황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 명판에는 2세기의 무덤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교황 납골당은 4세기가 되면서 공간 부족으로 더는 수용이 불가능해지자 이후로 선종한 교황들은 (산 마르티노 아이 몬티 성당 지하의) 프리실라 카타콤바, 발비나 카타콤바(교황 마르코의 시신이 매장됨), 칼레포디우스 카타콤바(교황 갈리스토 1세와 교황 율리오 1세의 시신이 매장됨), 폰시아노 카타콤바(교황 아나스타시오 1세와 교황 인노첸시오 1세의 시신이 매장됨), 펠리치타 카타콤바(교황 보니파시오 1세의 시신이 매장됨) 등과 같은 다른 지하 무덤에 매장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