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개방형 수장고가 문을 연다. 서울시는 ‘펀 시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리풀 미술관형 수장고’ 계획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설계 공모에 나선다. 서울시는 ‘서리풀 특별계획구역 개발사업’을 시행하는 SBV PFV와 지하철 2호선 서초역 인근 옛 정보사령부 부지에 미술관형 수장고를 짓는 협약을 맺었다. 부동산 개발회사 엠디엠그룹, 신한은행, 이지스자산운용이 참여하는 SBV PFV가 이 일대를 개발하면서 약 1300억원을 들여 서울시에 연면적 1만9500㎡ 규모의 수장고를 기부채납한다.
미술품과 예술작품은 전시기간이 아니면 90% 이상은 대개 지하 수장고에 보관한다. 보안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장고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요즘 추세다. 일반인은 물론 박물관 학예사, 미술관 큐레이터에게도 생소한 영역이지만 전시 패러다임이 소유에서 공유로, 수집에서 활용으로 바뀌고 있는 데다 보안과 전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의 ‘데포’,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등이 ‘개방형 수장고’로 유명하다.
서울시가 모델로 삼은 것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시립 미술관 보이만스 판뵈닝언이 2021년 개관한 ‘데포’. 1849년 개관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은 중세 회화는 물론 플랑드르 화가의 작품, 세잔, 고흐, 칸딘스키, 달리 등 미술사를 관통하는 15만 점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관이 보유한 회화, 조각, 도자 등의 작품 총 15만여 점 중 본관에는 불과 8%만 전시할 수 있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이 오랜 고민을 거쳐 2021년 세계 최대 규모의 개방형 수장고 데포를 개관했다. 데포는 문자 그대로 공간(창고)이자 미술품과 관객, 예술 그 자체를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데포는 작년 한 해에만 26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로 떠올랐는데 오세훈 서울시장도 작년 10월 유럽 출장길에 데포를 방문한 뒤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서울시는 서리풀 수장고를 '데포'에 버금가는 열린 예술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 건축가·사무소 7곳에서 외관 설계를 제안받아 시민 참여 형태로 올해 말 최종 설계안을 결정할 계획이다. 해외에선 데포를 설계한 세계적 건축사무소 MVRDV(네덜란드)를 비롯해 헤르조그 드 뫼롱(스위스), 포스터앤드파트너스(영국), 3XN(덴마크) 등 네 곳이 아이디어(시안)를 내기로 했다. 국내 건축가들은 유현준 홍익대 교수와 YG 사옥을 설계한 임재용, 강남부띠크 모나코를 설계한 조민석 건축가가 참여한다.
수장고 안 콘텐츠에도 공을 들인다. 학예사와 연구자만 접근할 수 있었던 시 산하 박물관과 미술관 네 곳(역사박물관, 시립미술관, 공예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의 대표 소장품 10만 점을 다양한 동선으로 전시할 계획이다.
최경주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보이는 수장고를 도시경쟁력을 상징하는 창의적 건축이자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지희 서울시 박물관기반확충팀장은 “서리풀 수장고는 미술품의 보존처리 과정을 100% 일반에 공개하는 최초 사례가 될 것”이라며 “예술품 보존과학자를 꿈꾸는 예술학도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