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성심병원 김현아 교수의 최근 책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는 환자들이 오랜 대기 끝에 의사와 대면하지만 정작 진찰 시간은 3분에 그치는 이유, 환자는 알지도 못하는 각종 검사시간이 진찰시간보다 훨씬 더 긴 이유 등 의료현장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문제들을 지적합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병원들이 ‘검사 공화국’이 된 이유를 병원의 수익 창출 시스템에서 찾습니다. 사립병원들은 낮은 의료수가로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그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고가의 검사를 무분별하게 시행한다는 것이지요.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진찰하고 검사가 정말 필요한지 판단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돈이 되지 않아서입니다. 의사는 3분 진료에 내몰리고 환자는 이 검사 저 검사 다 받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서게 됩니다. 검사가 제대로 되기나 한 걸까, 하는 의심이 마음 속에 피어나고 다른 대형 병원에서 똑 같은 검사를 다시 하는 ‘의료쇼핑’이 반복됩니다.
‘3분 진료’ ‘검사공화국’의 원인은 진찰료보다 검사료가 수익에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병원 경영진은 의사들이 진료시간을 줄여 더 많은 환자를 받도록 몰아붙입니다.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는 무너지고 그 자리엔 각종 첨단 장비와 검사, 시설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의료가 전기나 수돗물처럼 공공재 성격을 가진다는 인식은 아예 없습니다. 병원 재정의 상당 부분이 공적 자본인 국민건강보험으로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정부는 병원 운영을 민간 자본에 맡겨 둔 채 뒷짐지고 있는 사이 의료는 공공재 성격을 잃고 시장에 내맡겨졌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덤터기 안 쓰고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이 30%는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공의료가 사립병원과 경쟁할 정도는 돼야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국의 의료인력 인건비 대비 검사비 보상 수준은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비정상적이라는 겁니다. 그 결과 급하지 않은 검사를 굳이 매년 하도록 하고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 아닌 질병의 씨앗을 발견해 수검자의 스트레스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병원은 환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진료의 질을 올리기보다 고가의 검사장비를 구입하고 장비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안 해도 되는 검사를 권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망가진 현장을 바꾸기 위해선 의료수가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의료재원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배돼야 하는데 이를 위한 공적 담론의 장을 만드는 건 정부의 몫입니다. 또 고혈압마저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환자쏠림 현상’도 사라져야 합니다. 1차 병원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려면 한 환자를 최소 15분 이상 진찰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하는데 김 교수의 책을 읽어보면 현실은 요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