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 날 오후, 연휴가 끝난다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친구가 부고를 전해왔습니다. 장인상이랍니다. 다음 날은 일정이 있기도 하고 한가한 휴일이 낫겠다 싶어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빈소를 찾았습니다. 1938년생 85세.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장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크게 아쉬울 것 없는 평균치에 가깝지만 어쨌거나 유족들의 마음은 아쉽고 서운한 법입니다.
우리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2005년 78.2세, 2012년 80.9세, 2019년엔 83.3세로 늘었습니다. 50년 뒤에는 90.1세가 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혁명적인 의료기술이 나오지 않는 이상, 우리 세대에는 이보다 획기적으로 수명이 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의학계의 예측입니다. 여기까지가 현실적인 한계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상은 기대수명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래만 산다고 좋을까요. 중요한 건 건강수명입니다. 건강수명은 2005년 68.6세, 2012년엔 65.7세로 줄었고 2018년엔 64.4세로 조금 더 줄었습니다. 기대수명은 늘었는데 건강수명은 오히려 짧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진 겁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2005년 9.6세에서 2018년 18.9세로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이 얘기는 병을 앓다가 시름시름하는 기간이 늘었다는 뜻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죽는 상황이 아닐 때 미리 생각하고, 정리하고, 준비하는 게 필요합니다. 죽음을 무섭고 어두운 것으로만 여기지 말고 자주 떠올리고 대화하는 사회 분위기 만들어야 ‘죽음의 질’을 지금보다 낫게 할 수 있습니다. 자주 떠올리고 대화한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멀리하고 터부시한다고 죽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삶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며, 함께 하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줍니다. 이런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더 자주 나눠야 합니다.
위대하고 훌륭한 인물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빈부를 떠나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누구나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 이 세상에 자신만의 전설을 남기고 떠나면서 그 삶이 또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땅에 잠시 살았다는 의미 아닐까요.
죽음에 대한 준비는 미리 할수록 좋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살다가 생각이 바뀌면 고칠 수도 있고 바로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회와 국가가 함께 정책을 만들고 웰다잉 문화를 발전시켜야 가능한 일입니다. 개인과 사회가 연대해서 만들어야 존엄을 지키고 삶을 품위 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진정한 웰다잉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