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나이가 딱 그런 때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자녀를 출가시키는 시기. 결혼식이야 미리 잡혀 있지만 부고는 예고 없이 갑자기 전해지기 때문에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달에는 한 달 동안에 장례식 네 번, 결혼식 세 군데를 치렀습니다. 나로서는 애경사 수로 월간 최다입니다.
이 달에 경험한 인상적인 장례식과 결혼식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먼저 장례식. 친구 모친상인데 어머님의 연세가 103세입니다. 친구는 형 넷과 누나 넷, 그러니까 9남매 중 막내입니다. 그 정도 연세에다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를 고려하면 여러 자식 중 한둘 정도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인데 친구네 아홉 남매는 모두 살아서 어머님의 장례를 지켰습니다.
듣기에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혹시라도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일이 생길까 걱정하셨다는데 친구 어머니와 가족들은 엄청난 복을 타고났나 봅니다. 형제자매들에서 난 손주들과 증손주들까지 어머님의 직계가족만 1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내 주변에서 이렇게 다복한 가족은 처음입니다.
다만 사위 넷 중 셋은 먼저 세상을 떠나 유족들 명단에 없는 것이 옥에 티랄까. 그것도 다른 가족들과 비교하니까 그런 거지 큰형은 여든이 넘었고 누나들 나이도 이미 70대 중후반이기 때문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경우입니다. 어쨌든 빈소 분위기는 조금 과장하면 잔칫집과 다름없었습니다.
다음은 친구의 외동딸 결혼식.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 같은 형식적인 결혼식과 달리 요즘 결혼식은 다들 개성이 있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주례인데 요즘은 주례 있는 결혼식 보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번 결혼식도 주례 없이 진행됐습니다.
크게 보면 여느 결혼식과 별 차이 없지만 진행순서나 내용(나는 이걸 시퀀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을 보면 공을 들이고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입니다. 먼저 신랑의 부모가 동시에 입장하고 다음 신부 부모가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부터 특이합니다. 다음에 신랑이 씩씩하게 연회장으로 들어오고 마지막으로 신부가 행진을 합니다. 처음엔 신랑신부도 함께 입장하면 어땠을까 생각했는데 식을 마칠 때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신랑신부가 혼인서약을 동시에 하고 신랑 아버지가 성혼을 선언하면서 주례사를 대신한 덕담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신부의 20년 지기 친구가 웃음과 감동 넘치는 축사를 하고 신랑의 친구가 축가로 응수합니다. 이런 시퀀스가 진행되는 동안 신부의 절친이 직접 편집한 신랑신부를 담은 동영상이 스크린을 채워 상업적으로 만든 영상물에선 볼 수 없는 정성과 사랑을 연출해냅니다.
마지막으로 신랑과 신부가 함께 행진하는 것으로 예식을 마치는데 재미있고 웃기기만 해서 가벼운 결혼식과 달리 정중하고 예의 바르면서 고민을 많이 해서 튀진 않아도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인상적인 결혼식이었습니다. 주변의 진심 어린 축하와 정성이 함께 참여한 것도 그렇고 신랑과 신부가 각자 들어왔다가 나갈 때는 둘이 함께 행진하는 시퀀스로 서사를 완성시켰습니다.
결혼이 삶의 중요한 일부인 것처럼 죽음도 삶을 구성하는 일부인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다음 세대의 결혼식에는 축복과 희망을, 삶을 멋있고 아름답게 완성하신 어르신께는 존경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