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완판’을 거듭하던 하이엔드 오피스텔이 고전하고 있다. 오피스텔 투자 심리가 바닥인 가운데 고금리가 이어지며 자금 압박에 몰린 수분양자들의 계약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지카일룸M’ 시행사인 ‘카일룸디앤디’는 최근 103억 원가량의 채무를 인수했다. 오피스텔 수분양자들이 중도금 대출을 미상환하면서 원리금 잔액에 대해 지급보증 채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상지카일룸M은 논현동 243번지 일원에 지하 3층~지상 17층, 88실 규모로 지어지는 하이엔드 오피스텔이다. 분양을 시작한 2021년 당시 3.3㎡ 1억 7000만 원을 웃도는 분양가에도 계약이 잇따르며 완판된 바 있다. 그러나 분양 이후 시장이 얼어붙으며 상황은 반전됐다. 2021년 이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던 오피스텔 매매가격지수는 2022년 한자릿수로 떨어진 후 2023년부터 하락세에 들어섰다. 금리가 오르며 주택 시장이 얼어붙자 아파트 대체재로 여기던 오피스텔 역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실제 경기 악화로 인한 유동자금 부족 문제가 계약 해지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하이엔드 오피스텔은 분양가가 높은 만큼 전세 수요를 찾지 못하면 수분양자들의 잔금 납부가 더 어려워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시장 막바지 청약을 시작한 단지는 미분양에 홍역을 앓고 있다. 서울 서초구 ‘르니드’ 오피스텔은 2021년 말 분양을 시작했으나 햇수로 3년이 된 지금까지 미분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양가는 전용 84㎡형 기준 15억~16억 원으로, 3.3㎡당 약 6000만 원 수준이다. 2022년 분양을 시작한 서울 서초구 ‘인시그니아반포’도 여전히 잔여 세대 물량을 분양 중이다. 84㎡ 기준 22억~24억 원대로 3.3㎡당 7000만 원 선이다.
이처럼 자금 회수가 어렵다 보니 PF자금을 대겠다는 투자자도 사라졌다. 청담동 132-9 일원에 지상 20층 규모의 하이엔드 오피스텔 '토브 청담'을 추진하던 시행사 주성알앤디는 최근 사업을 포기하고 땅과 건물 등을 매각했다. PF투자자들이 요구한 사전분양률(50%)을 맞추기 어려웠던 탓이다. 또다른 하이엔드 오피스텔 개발을 추진하던 강남구 역삼동 인근 부지는 최근 공매에 부쳐져 감정가보다 약 800억 원(33%) 떨어진 가격에 낙찰됐다. 시행사 미래엔이 사들인 강남 프리마호텔 부지 역시 3.3㎡당 1억 원이 넘는 하이엔드 오피스텔로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수익성이 떨어지자 신세계를 새로운 투자자로 끌어들여 오피스와 호텔 등 복합시설 개발로 돌아섰다.
시장에선 하이엔드 오피스텔이 건설업계의 또 다른 ‘자금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1년 당시 우후죽순 개발을 시작한 하이엔드 오피스텔은 대부분 내년 쯤부터 차례대로 준공된다. 문제는 준공 시점까지 분양률이 80% 이상을 넘지 못하면 공사비 회수가 어렵다는 점이다. 영세한 시행사가 대부분인 만큼 하이엔드 오피스텔의 높은 공사비와 대출 등을 개발 주체인 시행사가 자체적으로 부담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하이엔드 오피스텔 현장은 가격이 높아 건설사들이 책임준공 기한을 맞추려고 자재 수급 대란 때도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공사를 이어왔다”며 “그러나 미분양은 물론 완판된 현장에서도 잔금 납부가 지연되면 건설사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