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친척 동생의 시모상이어서 주말에 조문을 다녀왔다. 고인은 쉰여덟에 남편을 여의고 이후 딸 셋 아들 둘과 41년을 더 살아 아흔아홉에 생을 마감했다. 병원으로 이송하는 중에 숨이 멎었다는 고인의 한 세기에 걸친 삶을 나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에 이른 현재까지의 생애가 파란만장했을 것임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먹고 살만해지면서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을 따지는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동서양의 학자들이 ‘좋은 죽음’을 정의하려고 시도해왔다. 영국에서 발간된 ‘밀레니엄 백서’에서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열두 가지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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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노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의 조건은 이렇다. ‘질병 없이 적절한 수명, 천수를 누린다’ ‘자식이나 배우자를 먼저 보내지 않고 부모노릇을 다해 자손들이 잘사는 걸 보고 죽는다’ ‘죽을 때 자손들에게 부담이나 폐를 끼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한다’ ‘가족이나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맞이한다’ ‘집에서 준비되고 편안한 상태로 고통 없이, 잠들 듯 죽음을 맞이한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삶을 마무리한다’
그렇지만 죽은 사람의 얘기를 들을 수가 없으니 전문가나 노인들의 의견이 100% ‘좋은 죽음’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가 죽기 직전에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한 단상 《아흔에 바라본 삶》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보태 짐작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말한다. “어제의 경험이 내일의 정답이 될 수 없고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공은 물질적 성취가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 친구 좋은 음식처럼 삶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기쁨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형용사로 표현해 주기를 원하는지, 묘비에 어떤 문구가 새겨졌으면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건 친절 믿음 정직 공정 같은 잘 보이지 않는 미덕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상의 삶 속에서 더 친절하고 다정해지려고 노력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