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는 보통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약물을 주입해 사망시키는 적극적 안락사를 뜻한다. 이에 비해 약물과 음식물 투입 등의 처치를 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도 있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건 ‘존엄사’라고 한다.
그 소식을 보면서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가 떠올랐다. 남자 주인공 윌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게 없는 젊은 사업가였다. 하지만 사고를 당해 사지가 마비돼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장애환자가 된다. 치료가 불가능해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영화는 급격한 클라이맥스도, 깜짝 놀랄 반전도 없지만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젊은 남자와 그를 안타깝게 여기며 간병하는 여자, 두 사람이 안쓰러웠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주인공의 외출을 응원했다. 가벼운 로맨스 영화처럼 보이지만 던지는 주제는 묵직하다. 윌이 안락사를 선택하면서 던지는 대사가 가슴에 꽂힌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내 인생은 아니에요.”
제한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룩샘부르크 뉴질랜드 같은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 그러나 2010년 ‘김할머니 사건’으로 존엄사와 연명치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 조건이 까다롭긴 하지만 존엄사는 합법이다.
‘알랭 들롱의 안락사 결심’ 뉴스에 ‘죽는 거라도 행복하게 죽고 싶다’는 댓글이 숱하게 달린 걸 보면 삶도 죽음만큼이나 고단하다는 뜻이지 싶다. 늦었지만 ‘삶의 질’ 뿐 아니라 ‘죽음의 질’도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