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기 전에 한번 보자’는 말을 12월에 하면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런지 송년모임이 11월로 당겨지는 경우가 꽤 많다. 12월은 다른 행사나 약속이 많고 모임장소 예약도 어렵다 보니 여유 있게 11월에 잡는 것 같다. 최근에 그런 자리가 몇 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동창들 모임이다. 동창이라고 해도 특별히 친한 사이가 아니면 자주 만나는 게 아니다 보니 대화가 흘러가는 패턴이 비슷한 걸 느낀다. 대개 ‘요즘 어떻게 지내냐? 하는 일은?’ 이런 안부 인사로 시작한다.
은퇴한 친구들도 있으니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다가 누군가 ‘어디 아픈 덴 없냐?’고 묻는 순간 친구들의 표정은 약간 어두워지는데 그에 반해 대화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제일 많이 등장하는 건 역시 혈압과 고지혈증이다. 그러고 나면 각자 갖고 있는 병들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치료에 효과를 봤고 심지어 머리 숱까지 까매졌다는 체험담이 이어지면서 효과 좋다는 기능성 샴푸가 등장하는가 하면 지방 어디에 있는 무슨 한방병원을 비롯해 전국의 탈모치료 병원과 갖가지 민간요법까지 더해지면 앞에 앉은 친구들의 머리카락이 갑자기 자라면서 풍성해지는 착시현상까지 생긴다.
증상이 비슷한 질병과 많은 친구의 주인공인 머리카락은 연대감을 깊게 하고 동료의식이 강해지면서 용하다는 약과 병원 이름이 휴대폰 메모장에 입력된다. 만병을 예방한다는 건강보조식품은 그 자리에서 바로 온라인으로 주문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쯤 되면 우리가 이 방에서 나가는 순간 젊음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갈 땐 씩씩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몇몇 친구가 요즘 나라 꼴 돌아가는 얘기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건강과 탈모 앞에서는 맥도 추지 못하고 바로 깨갱한다. 용하다는 병원, 효과 짱이라는 약, 건강보조식품, 머리카락 얘기만 한 것 같은데 세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렸다. 다들 약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머리카락 간수 잘해서 내년에 또 검증된 새로운 약 좀 알려주라,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