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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건축기행

루브르 박물관

서영복 객원 기자 입력 2024.11.30 09:08 수정 2024.11.30 09:08


1. 개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옛 궁전이자 박물관, 미술관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루브르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 외에도 명작들이 셀 수 없이 많다.
3동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38만 점 이상의 작품을 한 번씩 보려면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다만 이것은 정말 꼼꼼히 관람할 때의 이야기고, 중요한 유물 중심으로 돈다면 반나절 혹은 길어봐야 하루 안에 대부분 관람할 수 있다.
고풍스러운 루브르 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적인 유리 피라미드가 유명하다.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유리 피라미드는 처음에는 에펠 탑처럼 강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루브르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2. 역사

현재의 루브르는 과거에 왕궁이었던 곳을 개조했다.
1202년에 국왕 필리프 오귀스트가 이곳에 성채를 축조한 데서 비롯되었고 14세기 샤를 5세의 시대부터 왕궁으로 쓰였다.
1527년 프랑수아 1세는 중세의 루브르 성 개조를 계획, 전부를 헐어버리고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궁전을 세울 것을 결정, 피에르 레스코와 장 구종이 설계를 담당, 레스코가 현재의 살 데 카리아티드와 국왕의 2층 거실을 세우고 내외의 조각 장식은 장 구종이 담당했다.
이후 1563년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왕궁의 서쪽에 튈르리 궁전을 세웠고 이후 앙리 4세 시대에 걸쳐 센강 연변에 ‘물가의 장랑’이라 불리는 그랜드 갤러리를 증축하여 루브르와 튈르리 두 궁전을 연결시켰다. 이후 이 회랑은 주로 궁정의 화가·조각가·공예 작가 등의 주거지 겸 공방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624년 재상 리슐리외는 건축가인 자크 르메르시에에게 명하여 루브르 궁 확장 공사를 시행하였다.
1641년 루이 13세의 명의로 니콜라 푸생과 그 제자들이 그랜드 갤러리에 신화를 소재로한 벽화의 연작을 시도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완성되었고, 1661년의 화재 후, 왕의 거실과 남쪽 복도를 연결하는 프티 갤러리가 재건되고 르 블랑과 그 제자들이 내부장식을 하였으며, 그후 이 갤러리 천장 중앙에 외젠 들라크루아가 『피톤을 퇴치하는 아폴로』를 그렸다.
1664년 루이 14세의 재상 장바티스트 콜베르는 루브르 궁을 프랑스 왕의 주요 궁전으로 할 것을 결의, 설계를 위촉하고 기초석도 놓았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왕의 관심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치우쳤으므로 루브르 궁 계획은 일단 마무리되고 1674년에 페로의 안을 채용하여 일단락 지어졌다.
이후 루브르는 프랑스 왕실이 후원하는 예술가들의 주거지로서 파리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이 붕괴되면서 1793년 8월 루브르는 국민 의회의 결정으로 궁전에서 미술관으로 개장,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신관은 이탈리아 풍의 힘찬 조소성, 웅대한 돔 형인 망사르 지붕의 파빌리온 군의 장관으로 제 2제정 양식의 대표작이 되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1863년에 시공되어 1868년에야 센 강변에 남쪽 갤러리가 개축되었다.
1871년 파리 코뮌 시기 화재 피해를 입었으며 1884년 재개장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3. 구조

크게 쉴리 관, 드농 관, 리슐리외 관으로 나뉜다
안쪽 중앙에는 루브르의 상징이 되어버린 유리 피라미드가 있다.
루브르가 있던 옛날부터 있던 구조물은 아니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써 공모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프랑스 혁명의 사실상 시작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1989년에 완성되었다.
설계자는 건축가 이오밍 페이로, 그가 공모전에 제출한 피라미드 안이 선정될 당시 여론은 유리 피라미드가 루브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세게 반발하였다. 여론에 떠밀린 주최측에서는 해당안을 거절하려고 했었는데, 이에 이오밍 페이는 '피라미드는 영원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피라미드가 있는 루브르는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며 주최측을 설득했다.
또한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이 뚝심 있게 건축가의 뒷배가 되었고, 대통령과 건축가의 고집 끝에 결국 채택되었다.

4. 소장품

유명 유럽 박물관의 대표주자인 대영박물관이 역사 유물 중심의 '박물관' 개념에 가까운 반면 루브르 박물관은 미술관적 요소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루브르는 고대 중근동이나 이집트부터 대략 1850년대까지의 고전 작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고대 중근동이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유물,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 등에 관심이 있다면 필히 방문해봐야 할 곳이다.
또한 근대 미술계의 대작들, 쉽게 말해 교과서에서 보던 모나리자,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등도 바로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루브르 내에서 제일 사람이 붐비는 곳은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의 3군데이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작품 자체도 명작이지만 루브르의 주 관람경로의 갈림길 상에 위치한 데다 계단 홀 중간이라는 위치가 한 몫 한다.
모나리자의 경우 그 명성에 비해 그림 크기가 심히 작고, 사람은 엄청나게 몰려있고, 다른 작품과 달리 안전봉에 의해 접근이 3미터 정도 제한되는데다, 직원이 다음 사람을 위해 빨리 보고 지나가라고 닦달하는 통에 제대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방에 모나리자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마찬가지로 유명작이자 실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가나의 혼인잔치 또한 눈여겨볼 작품이다.
고대 회화도 꽤 명작이 많다.
드농 관 지하 1층의 '이집트의 유럽 여인' 일명 유로페엔도 안내 브로셔에서 빠져본 적이 없는 명작이다.
서기 2세기경의 작품. 회화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지만 함무라비 법전의 원본, 사이즈에서 관광객을 압도하는 라마수 조각상, 그리고 이집트의 서기 좌상 등 유명한 고대 금석문이나 조각들도 루브르 소장품 목록에 올라 있다. 이집트 상형문자 비석들은 셀수도 없을 만큼 많으며, 미이라를 넣은 석관들도 볼거리이다.
샹폴리옹이 이집트에서 직접 가져 왔다는 스핑크스 진품도 만나볼 수 있다.
로피탈의 정리를 발견한 로피탈의 대리석상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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