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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남이장군기념사업회, 2024년도 제3차 정기총회 개최

남길동 기자 입력 2024.05.11 22:40 수정 2024.05.17 16:04

남승철 2대 회장 이어 남상숭 3대 신임회장 이‧취임 거행
‘남이장군기념관’ ‘사당(충무사)’ 문화재 등록 사업추진 결의 다져..

충무공 남이장군기념사업회(회장 남승철)는 경남 창녕군 부곡면 충무공 남이장군기념관(충무사)에서 내외빈 등 150여 명 참석으로 2024년도 제3차 정기총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고 11일 밝혔다.

 

↑↑ 경남 창녕군 부곡면 충무공 남이장군기념관(충무사)에서 내외빈 등 참석으로 2024년도 제3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총회는 제1부 ▲ 식전행사 사당 참배 및 기념관 관람 ▲ 내외빈 소개 ▲ 성원보고 및 개회선언 ▲ 국민의례 ▲ 공로상 시상 ▲ 개회사 ▲ 축사 ▲ 격려사 ▲ 목적 및 사업낭독 ▲ 감사보고 ▲ 사업 및 결산보고 2024년 사업계획 ▲ 차기회장 감사 승인 ▲ 신임회장 인사 및 신임임원 소개 ▲ 감사패 수여 ▲ 우리들의 조상이야기 제2부 ▲ 종친회원 한마음다짐대회로 시(詩) 낭송회, 편자 던지기, 투호 던지기, 역사퀴즈, 노래자랑의 순으로 개최했다.

이날 주요 내빈으로 성낙인 창녕군수, 우기수 경남도의원, 김종호 창녕군의원, 어경애 부곡면장, 한삼윤 창녕문화원장, 남치우 남씨대종회장(의령남씨 대종회장), 남상서 남씨부산종친회장 등 자리를 빛냈다.

 

↑↑ 남상숭 신임회장은 남이장군기념사업회 발전을 위해 공헌한 감사패(남승철 회장)를 수여하고 있다,
↑↑ 남승철 회장은 남이장군기념사업회 발전을 위해 공헌한 공로상(남시종 경남 창녕군, 남중희 경남 창원시, 남상업 경남 창원시)을 수여했다,

이어 남이장군기념사업회 발전을 위해 공헌한 감사패(남승철 회장), 공로상(남시종 경남 창녕군, 남중희 경남 창원시, 남상업 경남 창원시)을 수여했다,

↑↑ 액운을 떨쳐 버리고 행운을 가져온다는 말편자 던지기, 투호 던지기 등 민속전통놀이를 하고 있다.
↑↑ 충무공 남이장군 시(詩) 낭송회(강순자 무안농협)

충무공 남이장군 시(詩) 낭송회, 액운을 떨쳐 버리고 행운을 가져온다는 말편자 던지기, 투호 던지기 등 민속전통놀이로 종친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매년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 남승철 회장 개회사

남승철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난 2012년 사당건립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남문들의 성금을 모아 충무사를 건립했으며 이어 기념사업회 회장까지 역임했다”면서 “남상숭 신임회장 및 총회에 참석한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했고, 2018년 4월 준공된 충무공 남이장군 기념관 및 충무사가 문화재로 등록되어 남이장군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 성낙인 창녕군수 축사

성낙인 군수는 “충무공 남이장군은 구산마을에 묘역이 있는 남휘⋅정선공주의 장손으로 17세의 어린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26세에 병조판서까지 올랐던 강직한 성품을 지닌 우리나라 역사의 대표적인 명장이자 의령남씨 가문의 자랑이다”면서 “장군님의 위국충절과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의령남씨 후손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충무공 남이장군 기념관이 후손에게 호연지기를 함양시키고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으며, 남이장군기념관과 사당 문화재 등록 사업을 추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축사를 전했다.

↑↑ 남상숭 신임회장 인사말씀
↑↑ 신임회장 인사 및 신임임원 소개

남상숭 신임회장은 “지난 수년간 남승철 회장님과 남치우 추진위원장님 그리고 여러 종원님 헌신으로 사당과 기념관이 건립되어 깊은 존경과 감사하였다”면서 “제3대 회장 추대되어 깊은 영광과 책임으로 ▲ ‘남이장군기념관’과 ‘사당’ 문화재 등록 사업추진 ▲ 향사 모시기 ▲ 기념관 관리 및 활성화 ▲ 교육사업 강화 ▲ 후손간 교류 활성화 등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남상숭 신임회장은 김해시 위치한 성모요양병원(병원장)에 근무중이다.

❏ 히스토리
2018년 4월 경남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에 남이장군기념관, 충무사 사당을 건립했다. 기념관(충무사)은 남이장군의 후예 의령남씨 의산위 집성촌으로 남이장군의 조부 태종의 부마 남휘와 4녀인 정선공주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 기념관(충무사) 입구에 애마였던 적마를 탄 남이장군의 거대한 기마상
↑↑ 남이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충무사
↑↑ 충무공 남이장군 영정

남이장군기념관은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전각 1채, 장군의 유물과 사료가 전시된 전각 2채로 조성되었다. 남이장군이 착용했던 찰갑과 투구, 장검, 월도, 창, 세조임금이 하사한 ‘적개공신록’, 무과 장원급제 및 병조판서 교지 등 전시되었고 기념관(충무사) 입구에는 애마였던 적마를 탄 남이장군의 거대한 기마상이 있다. 특히 참배 및 애마였던 적마의 편자를 만지면서 성명,주소,소원을 간절히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후문(後聞)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다.

[남이장군의 시]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 1467년 여진족 추장 이만주를 척살한 뒤 남이 장군이 남긴 시다.남이 장군을 모함한 유자광은 위의 시에서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 하면 훗날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를 트집 잡아 역모라고 모함했다.후에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유자광의 계략에 의한 것이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뒤 반탁시위에 김구(金九)는 친필로 6.23 반탁데모에 충무공 남이장군이 지은 '남아 이십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에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라는 시를 선사하여 격려하였다.

남이장군의 후예로 남이장군을 추모하는 단체는 남이장군 사당제보존회, 충무공남이장군 기념사업회 등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13호 남이장군묘(墓)는 남이섬(가묘)이 아닌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번지에 모셔져 있다. 남이장군은 1468년 돌아가실 때에는 역적으로 몰려 참형에 처해졌지만 사망 후 350년 만인 1818년 순조18년에 영의정 남공철(당시 우의정, 남이장군의 방손(傍孫))의 상소로 신원되고 관작이 복구되고 충무공 시호가 내려졌다.

남이장군에 대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수록된 기록
[저자/제공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남이 (南怡 , 1441~1468) 본관이 의령(宜寧)이며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의 손자였다. 조선 개국공신인 충경공 남재(南在)의 현손(玄孫)으로 의산군 남휘의 손자이다. 1457년(세조 3년)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했다.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여진을 토벌하여 이등군공에 올랐다. 26세에 병조판서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468년 예종이 즉위(1468년)하면서 어떤 사람이 남이가 공주와 간음하였다고 소문을 날조하여 곤욕을 치렀는데 그해 숙직을 서면서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이 들어설 징조”하고 했고 이를 엿들은 유자광은 영의정 강순 등과 역모를 하였다고 모함하여 하옥되었다. 1468년 10월 27일 남이는 군기감 앞 저잣거리에서 강순 등과 함께 효수당했다.

-충무공은 조선조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무인들에게 사후(死後)에 조정에서 내린 시호(諡號)의 하나로서 모두 아홉분이 시호를 받았다. 역대 아홉분의 충무공은

• 조영무(趙英茂:?~1414) 조선왕조 개국공신, 태종때 우의정
• 이준(1441~1479) 이시애난 평정하여 적개공신이 됨. 병조판서,영의정
• 남이(1441~1468) 17세때 무과에 장원. 25세때 길주에 가서 이시애난을 평정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움. 여진족 토벌 때 우상대장으로 큰 공을 세움. 27세때 병조판서가 됨. 흔히 소년장군 남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순신(1545~1598) 임진왜란때 3도수군 통제사로 한산대첩등 백전백승한 전세계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승전기록 세움. 거북선 발명.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을 받고 있음. 흔히 충무의 시호를 가진 인물들중에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져 있다.
• 김시민(1554~1592) 진주목사, 경상 우병상역임. 임진왜란때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 3,800여명의 군사로 왜군2만여명을 사상. 상락부원군으로 추봉.영의정에 추종
• 이수일(1554~1632) 임진왜란때 예천에서 의병일으킴.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병마절도사로 야인정벌,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이괄의난평정. 형조판서.좌의정.영의정에 추증
• 김응하(1580~1619) 25세때 무과합격,선전관,선천군수역임. 광해군때 명나라요청으로 요동에 가서 3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후금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영의정추증
• 정춘신(1576~1636) 17세대 광주목사 권률의 장개를 의주가지 피신한 선조에게 전달,만주망명막음,명·청·일본을 오가며 외교가로활약. 정묘호란때는 팔도부원수로활약.
• 구인후(1578~1658) 정묘호란때 주사대장으로 후금과싸움.병자호란때는 3천명의병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위 어영대장이 됨. 형조판서,공조판서,우의정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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